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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은 영남에 발길을 끊어라 - 영남과 호남은 어떻게 한국정치의 늪이 되었나

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 기사등록 2021-10-21 17:3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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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은 영남 중장년 세대의 아이돌

 

“또 부산이냐!”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전두환을 두둔하는 발언을 했다는 소식을 접한 필자는 그가 말한 내용이 아니라 말한 장소가 어딘지를 먼저 급하게 확인했다.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예상대로 부산이었다. 윤 전 총장은 하태경 의원의 지역구인 부산 해운대구에 자리한 국민의힘 당협위원회 사무실에서 문제의 실언을 입에 올렸다.

 

윤석열은 얼마 전에는 국민의힘에 새로 입당한 신규 당원들 가운데 위장당원이 많다는 쓸데없는 이야기를 꺼냈다가 그에게는 결코 이롭지 않을 논란에 휘말린 적이 있다. 그때는 같은 부산인 사상구에 소재한 장제원 의원의 당협위원회 사무실이 사건(?)의 현장이었다.

 

2012년의 안철수가 호남에서 길을 잃었다면, 2021년의 윤석열은 영남에서 길을 잃었다. 사진은 집에서 애견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경선 후보의 모습 (사진출처 : 윤석열 페이스북)모든 인간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빈부귀천에 관계없이 분위기에 휩쓸리기 마련이다. 개개인으로 살펴보면 전 세계에서 단연 고양과 교육 수준이 높고 세련된 문화예술의 세례를 가장 듬뿍 받았던 20세기 전반기의 독일인들이 히틀러가 합법적으로 집권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원인도 당대의 독일 유권자들이 주변 분위기에 줏대 없이 무책임하게 휩쓸린 탓이었다. 단지 히틀러는 괴벨스의 악마적 선전선동 기술을 빌려 그와 같은 분위기를 노골적으로 조장만 하면 됐을 뿐이다.

 

필자는 윤석열 경선후보가 마이크를 잡은 부산 지역의 당협위원회 분위기가 어땠을지 대충 상상이 된다. 5060 세대의 영남권 중장년 아저씨들이 모이면 그들 사이에 무슨 소리가 왁자지껄하게 터져 나오겠는가? 요즘 젊은 것들은 싹수가 노랗다며 청년세대를 겨냥한 집단적 성토가 들끓고. 박정희 때와 전두환 시절이 좋았다는 따위의 추억의 꼰대들 무용담이 장내를 꽉 채웠으리라. 이처럼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된 방향으로 고조된 분위기는 행사의 주인공인 윤석열에게도 자연스럽게 전염되었을 테고, 달아오른 분위기에 한껏 고무된 윤석열은 청년당원은 다 유령당원이고, 전두환은 인재를 고루 등용한 용인술의 귀재란 식의 얘기를 서슴없이 입 밖으로 꺼냈을 개연성이 짙다.

 

위정자와 인민들의 관계를 흔히 배와 물의 관계에 비유하곤 한다. 현대 대중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인과 유권자의 관계는 형식과 내용의 변증법적 관계에 비견된다. 형식이 내용을 잠시 포장할 수는 있어도, 궁극적으론 내용이 형식을 규정ㆍ지배하는 법이다. 영남 중장년 세대의 청년세대에 관한 몰이해와 전두환을 향한 도착적 향수가 윤석열을 확성기로 삼아 분출됐던 게 일련의 실언 사태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윤석열은 경선전에서 단기적으로 잠깐 손해를 보는 걸 각오하고 영남 지역에 아예 가지 말았어야 옳았다. 영남권 중장년 세대의 그릇된 정치적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로잡을 능력은 없을지언정, 그러한 오도된 가치관에 얄팍하게 영합하지는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만은 그는 명징하게 보여줘야만 했다.

 

영남이 그 밥이면 호남은 그 나물

 

그렇다면 과연 현재의 호남 지역의 사정은 나을까? 필자는 성남 대장동 게이트의 몸통 격인 ‘그분’이 이재명 경기도지사인지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문재인 정권에 장악된 김오수 총장의 검찰조직이 확 바뀌고, 집권세력의 가병무리에 불과한 김진욱 체제의 공수처가 역사의 쓰레기통 속으로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연후에야 제대로 낱낱이 규명될 수가 있으리라.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김만배 전 기자와 남욱 변호사 부류의 화천대유 일당이 천문학적 불로소득을 부당하고 불법적으로 챙겨갈 수 있도록 통로를 터주는 인허가 서류에 최종적으로 결재도장을 찍어준 당사자가 이재명 전 성남시장이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재명은 야당 의원들을 상대로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호통을 치고 비웃음을 날리기에 앞서서 국민들에게 겸허한 자세로 진솔한 사과를 해야만 마땅했다.

 

그런데 진솔한 사과를 외면한 채 해괴한 해명과 언죽번죽한 버티기로 일관하기로 결정한 게 오롯이 이재명 본인만의 뜻일까? 나는 이재명 경기지사를 터무니없는 궤변으로 두둔함으로써 이재명에 대한 불신과 거부감을 오히려 증폭시킨 주역들이 민형배 의원을 위시한 더불어민주당 호남 지역구 국회의원들이라는 부분에 특히 주목하고 싶다.

 

호남 지역 중장년 기성세대 또한 영남 지역의 동세대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일상적 삶에서는 반칙과 편법이 원칙과 상식으로 둔갑하는 일그러진 세태를 거의 평생에 걸쳐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들 눈높이에서 재단하자면 성남 대장동 택지개발 사업의 추진 과정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비리들과 별의별 탈법 행위는 별것이 아닐 수가 있다. 이와 같은 호남 기성세대의 구태의연한 가치관이 더불어민주당 안에서는 여전히 표준(New Normal)으로 군림하고 있다. 이재명이 국민들 앞에 머리 숙여 사죄할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하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이유다.

 

영남과 호남이 세파에 찌든 탓에 윤리감각이 턱없이 무뎌진 동네가 돼버린 것 전적으로 수도권 일극집중 구조의 결과물이다. 공정을 중시하고 투명한 일처리를 선호하는 청년세대가 서울로, 서울로 끊임없이 떠나는지라 지역에는 상대적으로 도덕성이 박약한 나이든 아저씨와 아줌마들만 남게 된 것이다. 그 아저씨와 아줌마들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권리당원이 되고, 진성당원이 되어 공직후보자 선출을 좌지우지하는 까닭에, 백이와 숙제를 부정부패의 화신이자 탐관오리의 대명사인 변학도와 조병갑으로 단 며칠 만에 바꿔버리는 무지막지한 곳이 한국 거대 정당의 경선판이 될 수밖에 없다.

 

지방 소멸을 막고 수도권 쏠림 현상을 완화하는 건 장기적 과제다. 정당의 대선후보들이 당장에 착수할 수 있는 성격의 과업이 아니다. 허나 지방에 거주하는 기성세대의 왜곡된 선입견과 비뚤어진 고정관념에 비굴하게 영합하지 않는 일은 후보자 자격 차원의 단계에서도 충분히 나설 수 있는 중대하고 유의미한 미래지향적 도전이자 모험이다.

 

영남과 호남은 더는 지역을 대표하지 않는다. 지역의 간판을 단 특정한 세대군일 따름이다. 중장년 세대의 과잉대표와 청년세대의 과소대표는 한국정치를 오랫동안 지속적이고 치명적으로 망가뜨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은 경선이 끝났으니 이제는 어쩔 도리가 없을 성싶다. 대신에 국민의힘 쪽으로는 아직 제안할 여지가 있을 듯하다. 국민의힘 경선 후보자들은 영남에서의 향후의 모든 일정을 즉각 취소하기 바란다. 가봤자 청년세대의 냉소와 수도권 중도층의 혐오감만 키우는 망발과 행보만 되풀이될 게 뻔하다.


영남에 가지 않겠다는 선언. 명분상으로 올바르기도 하거니와, 내년 대선 승패의 열쇠를 손에 쥔 수도권 젊은 유권자들의 표심을 효과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실리적으로 남는 장사이기도 하다. 기성세대의 낡고 획일적인 세계관에만 지금처럼 계속 타성적으로 의지해서는 그 어느 정치인과 정치세력도 다양하고 발랄한 세계관이 백화제방을 이뤄갈 메타버스 시대에 생존할 수도, 성공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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