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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은 왜 실패했는가 - 정무를 방기한 ‘정치 실무자’의 비극

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 기사등록 2021-10-09 23:3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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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은 “실무만” 합니다


정세균은 정치 대신 행정과 당무에 매진한 비정지인형 정치인이었다. (사진 정세균 페이스북 계정)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대한민국 제도정치권에서 대통령을 빼고는 전부 경험해본 다용도 팔방미인으로 통한다. 그가 입법부의 수장인 국회의장에서 행정부의 2인자인 국무총리로 직행한 지극히 이례적 사태는 정세균의 관운이, 일복이, 그리고 처세술이 얼마나 탁월한지를 여실하게 웅변하는 사례였다.

 

그러나 정세균은 지금의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대선후보를 선출하는 당내 경선에서 초반부터 부진을 거듭하다가 결국에는 중도에 사퇴하고 말았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국민들 사이에서 비호감의 단계를 지나 밉상으로 낙인찍히다시피 했다. 더욱이 추미애는 현재의 집권세력에게는 신성불가침한 지존무상의 존재와 같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전에 현직 대통령으로 재임할 당시 그를 앞장서서 탄핵했다는 씻기 어려운 원죄적 오점마저 갖고 있다. 그런 하자 많은 추미애에게조차 밀렸을 지경이면 정세균이 받은 경선 성적표는 실망스러운 부진을 뛰어넘어 어이없는 졸전이라고 평가되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듯싶다.

 

정세균이 뜨지 못한 데에는 다양한 이유들이 제시되고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 원인으로 지목되는 부분이 정세균의 고질적인 대중성 결핍이다. 유권자들의 마음과 지지를 초강력 진공청소기처럼 신속히 빨아들일 수 있는 매력과 위광이 정세균에게는 모자라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진단은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리다. 정세균이 대중성이 결여됐다는 건 분명 올바른 분석인데, 대중성 부족은 정세균이 실패한 원인이 아닌 결과다. 정세균은 대중성이 없기 때문에 실패한 게 아니다. 실패했기 때문에 대중성이 없었던 셈이다.

 

정세균은 기업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이후에는 그야말로 꽃길만 걸어왔다. 꽃길만 걸어온 정세균을 서슴없이 실패자(Loser)로 규정하는 필자를 향해 이상한 놈이라며 면박을 주려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필자는 다시금 단호히 외치련다. 정세균은 실패했다!

 

축구선수가 축구에 실패하면 구단에서 가차 없이 방출된다. 기업인이 기업으로 실패하면 비참하게 깡통을 찬다. 군인이 전쟁에 실패하면 용서 못할 전범이 된다. 정치인이 정치에 실패하면 어떻게 되느냐? 정세균의 경우에서 증명되듯 승승장구할 수도 있다. 단, 그때부터는 평범한 유권자들과 동고동락하는 통상적 의미의 정치가 아니라, 소수의 권력자를 상대로 하는 ‘슬기로운 사회생활’과 비슷한 형태로 정치의 성격이 변질되기 마련이다.

 

정세균이 한국정치의 일인자로 부상하지 못한 근본적 연유를 이제부터 압축적으로 탐구해보겠다. 정세균은 사실은 정치를 하지 않는 정치인이었다. 그는 의도적으로 정무를 철저히 회피ㆍ방기해왔다. 정세균은 정무 대신에 업무, 곧 행정과 당무에만 오롯이 매진하는 경로를 줄곧 택해왔다.

 

직업 정치인의 정무와 업무는 어떻게 구분되는가? 더불어민주당 정치인이 국민의힘을 비난하는 건 업무이다. 마찬가지 이치에서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문재인 정권을 비판하는 행동 또한 업무이다. 반대로, 여당 사람이 같은 여당 사람과 싸울 때 혹은 야당 인사가 자당 소속의 야당 인사와 격돌할 시에 비로소 업무가 끝나고 정무가 시작된다.

 

그렇다. 정치의 본질은 권력투쟁이고, 권력투쟁의 본령은 치열하고 살벌한 내부투쟁에 있다. 현대 한국정치의 총체적 저질화 과정은 정치의 진수이자 고갱이인 내부투쟁에 ‘내부총질’이라는 비열한 누명을 덧씌우면서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다. 역동적이며 진취적인 내부투쟁이 질식되자 그 자리에 들어선 대체물이 두 가지이다. 첫째는 시도 때도 없이 난무하는 온갖 고소고발로 점철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다. 둘째는, 김어준 부류나 강용석 등속의 타락하고 탐욕스러운 인터넷 정치 브로커들이 주도ㆍ조장하는 비루한 팬덤 정치이다.


정치인은 정치로 인민에게 보답해야


고문과 미행이 판치던 혹독하고 서슬 퍼런 군사독재 시대에도 김대중의 동교동계와 김영삼의 상도동계는 서로 죽어라 다퉜다. 혹자는 야당이 분열한 탓에 민간으로의 정권교체가 늦어졌다고 주장하지만, 내부투쟁이 사라지고 이른바 원팀으로 화석화된 야당은 열정과 의욕을 상실한 영혼 없는 기능적 관료조직으로 전락할 뿐이다.

 

내부투쟁이 죽으면 당도 덩달아 죽는 일은 여당이 됐을 때 더 빠르고 심하다. 박정희의 민주공화당과 전두환의 민주정의당에 버금가는 원팀 정당을 지향한 더불어민주당이 전임 정권인 박근혜 정권이 탄핵당하는 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기막힌 호재에도 불구하고 정권재창출 여부가 불투명한 절망적인 나락으로 차츰차츰 굴러 떨어진 현실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정세균은 업무에 유능한 정치인이었다. 허나 그는 정무를 두려워한 정치인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국민들에게 정세균은 그가 국회의장으로 영전하고, 국무총리로 약진했어도 성실한 실무자 겸 부지런한 당료로 항상 여겨졌을 따름이다.

 

음주운전을 비롯한 각종 사건사고로 물의를 빚은 프로야구 선수들조차 팬들에 대한 사죄의 표시로 “야구로 보답하겠다”는 말을 남기곤 해왔다. 정세균은 경선후보직에서 사퇴한 이후 종적이 묘연하다. 침잠과 칩거의 나날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재명 경기도지사가가 더불어민주당의 공식 대선주자로 뽑히는 게 유력해진 상황이다. 그렇지만 일개 시행사에 불과한 화천대유자산관리가 이재명 지사가 성남시장 재직 시절 인허가를 내준 판교 대장지구의 택지개발 사업으로 천문학적 액수의 불로소득을 거뒀다는 의혹으로 말미암아 이재명은 ‘그들만의 열렬한 대선후보’가 될 위기에 처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명언대로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작금의 정치지형은 정세균에게 새로운 기회의 공간이 열릴 수도 있는 대단히 유동적 정세이다. 관건은 정세균이 “업무로 보답하겠다”는 기존의 식상하고 소극적인 태도와 인식을 또다시 답습한다면 그는 정치 지도자로 승천하지 못한 채 정치 실무자라는 이무기에 항구적으로 머무를 것이란 점이다.

 

블라디미르 레닌은 오랜 망명생활을 마치고 러시아 제국의 수도인 페트로그라드로 돌아오자마자 세상의 예상을 깨고 케렌스키 정부가 아닌 멘셰비키 일파에게 독설로 가득히 장전된 총구를 겨눴다. 레닌의 망설임 없는 내부총질이 볼셰비키에게 10월 혁명으로 집권할 수 있는 확실한 기반을 구축해줬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의 본질은 늘 내부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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