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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과 청태종을 생각한다 - 노론의 ‘북벌’과 친문의 ‘한반도 평화 정책’의 목표는

공희준 편집위원

  • 기사등록 2020-09-28 17:5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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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의에 갈음하여

 

필자의 가족 가운데 한 명이 허리가 좋지 않아 한 달 예정으로 최근 입원을 했다. 식구 하나가 병원 신세를 지게 되니 비록 잠정적일지언정 가정이 해체되는 상황을 맞이했다. 그로 인해 필자 개인의 일상생활마저 뒤죽박죽 엉망진창이 되었다.

 

가족이 아프기만 해도 이토록 힘들고 고통스럽다. 하물며 불의의 사건사고로 말미암아 가족 구성원이 소중한 생명을 갑자기 잃었다면 남은 사람들은 실로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것 같은 참담한 심정일 것이다. 필자가 서해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표류하다가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진 해양수산부 소속의 한 어업지도 담당 공무원의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는 연유이다.

 

당장 사람이 죽었다. 조난인지, 월북인지는 나중에 차분히 따져도 결코 늦지 않다. 지금은 유가족의 슬픔과 함께하는 일이 급선무인 시간이다. 그러한 존중과 배려의 자세야말로 보수세력이 떠드는 자유민주주의의 본령이자, 진보진영이 주장해온 민주공화국의 의무이리라.

 

북한, 의외로 살아 있네


청태종 홍타이지(1592~1643)는 조선 노론의 북벌이 순전히 내수용 선전구호임을 정확히 꿰뚫어 봤다. (구글 이미지)어느 어업지도원이 북한 인민군에게 살해당한 일을 계기로 고질적 남남갈등이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와 달리 남북 간의 긴장감은 아직은 크게 고조되지 않고 있다. 북한은 평소대로 제 갈 길을 가고 있으며, 남한은 언제나 그렇듯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상태가 지루하게 계속되고 있다.

 

필자는 한 어업지도원의 사망 사태를 지켜보면서 두 가지 이유에서 놀랐다. 첫째는 북한이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란 점 때문에 놀랐다. 근거가 뭐냐고? 장기간의 극심한 식량난과 경제위기로 국가시스템 전체가 총체적 작동 불능에 빠졌다는 외부세계의 시각이 무색하게 북한이 남한 공무원을 총으로 쏘아 무참하게 살해한 일련의 과정은 저들 나름대로 개발해온 매뉴얼을 충실하게 따라가며 이뤄졌기 때문이다.

 

전면적 붕괴단계에 직면한 국가는 동일한 성질의 문제에 대처할 적에 그 방침과 대책이 그때그때 다르기 마련이다. 그런 나라에는 원칙도 없고 체계도 없으며, 법률적이고 제도적으로 규정된 절차와 수단은 깡그리 무시되기 일쑤다.

 

허나 북한 당국이 남한 정부에 친서 형식으로 통보한 전문에 의거하면 북한의 ‘대남경계태세’는 가히 철통같았고, 현장에서의 대응행동들은 그들이 기존에 준비해놨을 수칙대로 가지런히 일사불란하게 수행되었다. 북한이 가난한 나라일망정 이라크나 소말리아 유형의, 명목상의 중앙정부는 존재하되 실제로는 무정부 상태가 이어지고 있는 ‘실패한 국가(Failed State)’까지는 아니었던 셈이다.

 

원칙도, 체계도 없이 우왕좌왕하면서 정부의 주요한 의사결정 내용이 그때그때 다르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실패한 국가는 남한일 게다. 그러므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와 추미애 현 법무장관 소동을 거치며 인구에 널리 회자되어온 ‘내로남불’은 결과이고 현상일 뿐이다. 원인과 본질은 한국이 체계가 사라지고 원칙이 실종된, 영락없는 실패한 국가인 데 있다. 만약에 이러한 상태가 앞으로 10년 정도 더 지속된다면 국제사회의 냉정한 평가에서 이라크와 소말리아 옆에는 북한이 아닌 남한이 자리하게 될지도 모를 노릇이다.

 

필자가 놀란 둘째 이유는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이 정점에 위치한 현재의 남한 집권세력의 의중과 성격을 너무나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대방의 실체와 깜냥을 엑스레이처럼 속속들이 투시하고 있다는 데에서 김정은은 청태종 홍타이지(皇太極)와 난형난제인 격이다.

 

병자호란을 일으켜 조선의 강토를 유린한 홍타이지가 한겨울의 남한산성에서 농성하던 인조를 결국은 성 밖으로 끌어내 삼전도의 치욕을 강요한 사실은 한반도에서는 삼척동자조차 훤히 알고 있을 지경이다.

 

구글에서 검색해보니 청나라 태종이 태어난 연도는 공교롭게도 임진왜란이 발발한 서기 1592년이었다. 동아시아의 정세가 지각변동을 시작한 시점에 그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청태종은 명나라가 멸망한 바로 전해인 서기 1643년에 죽었다. 급작스러운 암살이 아닌 자연스런 병사인지라 자신의 후계자들에게 확실한 유조를 남기기 충분한 여건이었다.

 

조선의 노론과 남한의 친문은 어떻게 닮았나

 

그런데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청태종이 임종을 맞이하면서 조선의 복수전을 경계하라는 유언을 말했다는 기록을 여태껏 찾지 못했다. 그 꼼꼼하고 치밀하며 용의주도했던 홍타이지가…. 필자는 그 까닭은 청태종이 노론 치하의 조선왕조는 여진족에 보복을 감행할 진정한 의지도, 실질적 능력도 전부 결여했음을 여우같이 간파한 데 있다고 생각한다.

 

병자호란의 치욕 이후 조선은 공공연하게 북벌을 추진했다. 아니, 추진하는 척했다. 따라서 인조의 둘째 아들 효종 임금 대에서 절정에 달한 북벌 운동은 국가기밀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청나라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에 뒤이은 세 번째 호란을 벌여 저 말 많고 시건방진 까불이 조선을 참교육하지 않았다. 청태종의 후계자들은 조선의 국시인 ‘북벌’이 순전히 대내용 선전의제(Propaganda Agenda)에 불과한 정책임을 영악하고 예리하게 꿰뚫어 보았다.

 

조선의 노론이 실행할 의욕도 역량도 없던 ‘북벌’을 지배 이데올로기로 채택해 자신들이 편안하게 누려온 기득권 체제를 공고히 다져나갔다면, 문재인 정권은 ‘한반도 평화’를 지고지순한 가치로 내세우며 학생운동권 출신 인사들과 그 식솔들만 잘 먹고 잘사는 ‘586 천년왕국’의 건설을 획책하는 중이다.

 

대한민국 육군 준장으로 전역한 한설 순천대학교 초빙교수는 김정은 정권이 남북관계 개선 작업에서 완전히 손을 놔버린 근본적 동기와 본원적 배경은 북한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국내정치적 목적만을 염두에 둔 내수용 시책 겸 선거용 공약으로 판단한 데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노론의 북벌 추진도, 21세기판 노론일 친문세력의 대북정책도 궁극적 초점은 철두철미하게 국내정치적 권력기반의 확충과 강화에 맞춰졌다고 하겠다.

 

조선이 아무리 소리 높여 북벌을 외쳐도 북벌의 대상인 청나라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청은 오로지 입으로만 북벌을 선동하는 노론이 조선의 집권층으로 군림하는 현실을 은근히 반겼다. 문재인 정권이 수시로 이런저런 대북제안들을 발표해오다 급기야 종전선언까지 밀어붙여도 남북관계의 또 다른 일방이자 당사자인 북측은 여전히 묵묵부답일 따름이다. 문재인 정부가 부지런히 발송하는 모든 대북정책의 최종적 배송지가 평양이 아니라 여의도의 리얼미터 사무실과 종로의 한국갤럽 본사임을 이제는 북한이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탓이다.

 

지혜로움과 어리석음, 유능함과 무능함은 늘 상대적이다. 노론은 소론과 남인과 북인 등 그들의 정적들과 비교해서는 똑똑했다. 그렇지만 청나라 조정과 견주면 한없이 미련했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힘으로 대표되는 야권 곁에선 압도적으로 거대하다. 반면에 북한 김정은 정권을 필두로 한 외세 앞에만 서면 가수 김수희의 노래인 「애모」의 가사에서와 같이 자꾸만 작아진다.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비루한 집권세력이 다스리는 나라의 젊은 청년세대가 호연지기와 진취적 기상 대신에 소시민적인 ‘소확행’과 속물적인 ‘영끌 투자’에 열광하는 세태는 작금의 남조선의 당연하고도 필연적인 운명, 아니 팔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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