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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키비아데스, 뒤통수 치기의 묘미를 보여주다 - 변신과 적응의 리더십 : 알키비아데스 (4)

공희준 편집위원

  • 기사등록 2020-09-14 13:5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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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키비아데스가 스파르타인들의 뒤통수를 친 사건은 아테네인들에게는 한국의 을룡타만큼이니 통쾌하고 후련한 쾌거로 한동안 자리매김을 했다. (이미지 출처 : 구글)알키비아데스는 공직에 입문하자마자 단 두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인물들을 단박에 능가하는 발군의 역량을 과시했다. 알키비아데스에게 일방적으로 압도당하지 않은 두 명의 경쟁자는 니키아스와 파이악스였다. 전자는 검증된 경륜으로 이미 예전부터 성가를 높여왔으며, 알키비아데스와 비슷한 또래인 후자는 찬란한 가문의 후광을 등에 업고 있었다.

 

히페르볼루스는 능력과 배경이 아닌 얼굴의 두꺼움에서 아테네의 최고존엄으로 군림하는 사내였다. 그의 뻔뻔함은 21세기에 이르러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는 국제정치 이론으로 더욱더 주목받고 있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저자 투키디데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히페르볼루스의 뻔뻔함은 타인의 시선과 견해를 철저히 무시하는 오만과 불통에서 비롯되었는데, 그의 이와 같은 독선과 파렴치함은 자기들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정적을 제거하려는 음모자들에게 짧짤한 이용 대상이 되었다. 그들이 히페르볼루스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도편추방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도편추방은 독재자의 위치를 노릴 수 있는 야심가를 합법적 수단인 투표를 통해 사전에 평화적으로 걸러내는 데 있었다. 따라서 개나 소나 도편추방의 표적이 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아테네에서 가장 잘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알키비아데스, 니키아스, 파이악스 3인 가운데 한 명이 히페르볼루스가 동을 뜬 불순한 도편추방 선거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알키비아데스는 가만히 앉아서 당할 인간이 절대 아니었다. 그는 상대적으로 말이 잘 통하는 니키아스와 회동해 회심의 반격을 준비했다. 도편추방을 획책하는 히페르볼루스가 되레 도편추방을 당하도록 니키아스와 모의해 미리 손을 써놨던 것이다.

 

알키비아데스와 니키아스가 함께 꾸린 팀은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원 팀이 아니었다. 히페르볼루스를 축출하려는 목적으로 급조된 프로젝트 팀일 따름이었다.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이상 알키비아데스는 니키아스와의 밀접한 동료관계를 더는 유지할 필요는 없었다.

 

이 무렵 알키비아데스는 니키아스 때문에 무척이나 빈정이 상한 상태였다. 필로스 전투에서 아테네군에게 생포된 라케다이몬 포로들을 보호해준 당사자가 다름 아닌 알키비아데스였음에도 불구하고, 스파르타가 그의 기여와 존재는 싹 무시한 채 니키아스에게만 감사의 뜻을 표했던 탓이다. 그리스 세계에서는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 화의가 성립한 일이 모두 니키아스의 노력 덕분이라며 양국의 화평을 ‘니키아스의 평화’라고 칭송하였다.

 

알키비아데스의 뒤끝이 작렬한 건 예정된 순서와 진배없었다.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네가 스파르타와의 동맹을 조만간 파기할 테니 아테네와 서둘러 비밀동맹조약을 체결하라고 아르고스 사람들을 은밀히 선동했다. 아르고스는 스파르타에 대한 두려움과 피해의식이 전통적으로 매우 강한 도시국가(Polis)였다.

 

아르고스를 부추긴 일은 쓸데없는 짓이었다. 스파르타가 아테네와의 평화협정을 위반하는 행동을 선제적으로 저지른 연유에서였다. 스파르타는 아테네와는 숙적관계에 있는 보이오티아와 동맹을 맺은 다음, 아테네로의 귀속이 확정된 파낙톤 지역을 온전하게 돌려주겠다는 애당초 약속과 달리 철저히 파괴한 후에 반환하였다.

 

알키비아데스는 지체 없이 행동에 나섰다. 민회의 연단에 선 알키비아데스는 니키아스가 스팍테리아 섬에 낙오된 스파르타 병사들을 라케다이몬 땅으로 고이 돌려주었을 뿐더러, 스파르타가 열방들과 동맹을 맺는 모습을 목격하면서도 이를 그냥 수수방관하기만 했다고 그를 맹렬히 성토하였다. 이렇게 스파르타에는 한없이 유화적인 니키아스가 아테네가 더 많은 동맹국을 규합하려고 시도할 적마다 강력하게 제동을 걸기 일쑤였다고 비난하는 대목에서 알키비아데스의 니키아스 탄핵은 최고조에 달했다.

 

궁지에 몰린 니키아스에게 뜻밖의 구세주가 나타났다. 스파르타에서 파견한 사절단이 때마침 도착해 아테네 측에 대단히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며 양국 간 우호를 호소한 것이다.

 

역시나 이번에도 알키비아데스는 우두커니 손을 놓고만 있지는 않았다. 그는 스파르타 사절단이 본국 정부로부터 전권을 부여받았다는 정보를 입수하고서는 남몰래 사절단과 접촉해 교묘하게 사기를 쳤다.

 

알키비아데스는 스파르타 사절단이 실권 있는 대표자들임을 민회에 참석한 아테네 인민들이 알게 되면 이들에게 무리한 요구사항들을 강요해 전부 관철시킬 게 분명하다고 짐짓 걱정스러운 투로 이야기면서, 다음날 열리는 민회에 나가게 되면 어떤 권한도 위임받지 않은 허수아비들인 것처럼 연기하라고 라케다이몬인들에게 마치 큰 선심이나 쓰는 것 같이 넌지시 귀띔했다.

 

프록세녹스는 영사와 로비스트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역할이다. 이를테면 대한민국의 주 오사카 총영사관의 영사로 현지에 거주하는 일본인을 공개적으로 발탁하면 이 사람이 바로 프록세스가 된다. 알키비아데스는 스파르타의 ‘주 아테네 프록세스’로서 오랫동안 성실하게 업무를 수행해온 터였다. 게다가 그는 스파르타 출신 유모 밑에서 성장했다. 스파르타의 외교관들 입장에서는 알키비아데스의 선의와 진정성을 구태여 의심할 이유가 전혀 없었던 셈이다.

 

이튿날의 아테네 민회는 벌집을 쑤신 꼴이 되고 말았다. 스파르타가 아무 권능도 없는 능참봉들에게 평화교섭의 중차대한 임무를 맡겨 아테네로 보냈다는 소리에 아테네인들은 화가 머리끝까지 단단히 차올랐다. 당황한 스파르타 사절단이 알키비아데스에게 다급하게 도움을 요청하자 그는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지으며 천연덕스럽게 발뺌함으로써 라케다이몬인들의 뒤통수를 제대로 쳤다. 아무것도 모르기로는 니키아스 또한 스파르타 사절단과 오십 보, 백 보인 처지였다. 그는 라케다이몬이 자신의 뒤통수를 쳤다며 얼굴 전체가 분노와 수치심으로 일그러졌다.

 

선한 동기가 선한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즉 거꾸로 생각하면 사악한 동기가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이때의 알키비아데스의 경우가 딱 이랬다.

 

스파르타 사절단이 거둔 유일한 성과라고는 아테네인들에게 몰매만 맞지 않은 것뿐인 상황에서 알키비아데스의 주도 아래 아테네는 아르고스와 만티네이아와 엘리스를 아테네가 이끌어온 델로스 동맹의 깃발 아래로 차례차례 포섭하였다. 이로 인해 스파르타는 여태껏 자국의 안마당으로 여겨온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 오히려 역으로 포위당할지도 모를 위험에 빠졌다.

 

만티네이아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거의 정중앙에 자리한 나라였다. 아테네와 동맹을 맺기 전까지 이곳은 과두정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아테네와의 수교를 계기로 만티네이아에서는 과두정이 무너지고 민주정이 들어섰다. 알키비아데스는 새로 수립된 민주정부의 지도자들을 설득해 스파르타의 침략에 대비한 긴 성벽을 쌓도록 했다. 그는 해안가까지 연결된 이 성벽이 조기에 완공될 수 있게끔 아테네의 축성 기술자들을 만티네이아 당국에 지원해주었다.

 

그는 동일한 정책을 파트라에도 적용했는데, 몇몇 파트라이의 인사들이 아테네도 스파르타만큼이나 신용할 수 없는 불량국가라면서 노골적인 경계심을 드러내자 “아테네는 다리부터 조금씩 천천히 먹지만, 스파르타는 머리부터 한 입에 단숨에 삼키오”라고 대꾸하며 반대 의견을 일소에 부쳤다.

 

알키비아데스는 동맹에만 의지하는 정책을 취하지 않았다. 그의 최종적 목표는 자강이었다. 그는 아테네의 젊은 전사들에게 밀과 보리, 포도와 올리브가 자라는 모든 땅을 조국의 영토로 여기도록 가르쳤다. 이 네 가지는 그리스의 대표적 농작물들이었으니, 한마디로 그리스 전체가 아테네의 영토가 돼야만 한다는 훈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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